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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군대이야기/추억록

[스크랩] 201특공여단 방문기

* 바람 * 2009. 2. 13. 10:00
출처 :http://blog.naver.com/william99/

내용 :


특공!
 
지금부터 40여년 전 어느 10월1일!
그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고, 유명한 장군(이순신, 권율, 강감찬...)들이
책에서 무척 우대 받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읽은 위인전은 거의 장군들 이야기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흠, 내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가?)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이 군 출신이라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군의 날에도 항상 군인들 행진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 행진을 TV로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문제의 어느해인가의 10월 1일의 이야기 입니다.
TV를 보며 가장 기억에 남던 일은 위풍당당! 한 탱크....
그리고 길다랗고 커서 트럭으로 끌고가던 커다란 포....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제 관심을 크게 끌지 않았지만 나중에 오히려 기억에 크게 남던 광경....
그것은 바로 낙하산 타고 강하하는 용감한 군인 아저씨들 모습...
저는 그렇게 낙하산을 타는 사람은 분명히 뭔가 특수한 사람들이며
절대로 "보통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1984년 10월 6일.
논산으로 입대를 하고 자대 배치를 받고  안동에 도착해 보니,
특공대라나 뭐라나 하더군요.
함께 간 동기들의 낯빛은 흙빛이 되었지만, 저는 별로 꺼리질 않았었습니다.
철이 없었나, 생각이 없었나...
 
10월에 입대 했으니 자대에서 이등병,일병 생활을 하며 적응하느라 고생을 했었습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이 다 하는 고생)
그리고 어느 날...
공수지상교육을 받는다해서 가 보니 2주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뺑뺑이를 돌리고
지상교육이 다 끝나는 토요일날 반합 딱가리에 막걸리 두어 모음을 받아 마시며
뺑~ 돌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로 낙하산을 타러 가는 길.
총 4번을 탔습니다.


낙하산 탈때의 기분을 원색적으로 표현을 해 보면,
허공으로 몸을 날린 후 낙하산이 펼쳐질 때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제 몸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유낙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순간의 기분은(원색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식사하실 예정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똥구멍으로 박하사탕 막대기를 푹 쑤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쏴한 기운이 온 내장을 다 관통하고 점점 위로 올라와 입으로 빠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
4번 다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일만,이만,삼만,사만!" 을 외치고  "산개검사!"라고 소리치며 머리를 들어 위를 보며



낙하산이 펴졌나 펴지지 않았나를 확인할 때, 낙하산은 펴지고 그 순간 제 몸은
공중으로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낙하산이 펴지지 전까지 자유낙하를 하다가 낙하산이 펴지면 낙하속도는 급강하하여
잘못하면 허리가 빠집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강하할 때는 다리를 들고 엉덩이를 밑으로 해서 V자 자세로
뛰어내립니다.
평생 지상에서만 살며 온몸을 두 발로만 바치고 살던 인간이 낙하산을 타며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는 건, 본능상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살인적인 이주간의 공수지상 훈련덕에
그럭저럭 다리를 위로 들어올리고 뛰는, 본능을 뛰어넘는 짓을 하게 되는데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낙하산이 펴지는 순간 급강하하는 낙하속도 때문에 허리가 빠질 것을,
들고 있던 다리가 밑으로 내려가며 완충해 준다는 사실.
 


강하가 끝나면 천리행군으로 복귀합니다.
천리면 400km의 거리입니다.
낙하 한 곳에서부터 부대까지 직선거리로 1000리가 되지 않아 꼬불꼬불 행군해 나갑니다.
충청도 경계선이 보이고 경상도 경계선이 보이고 또 다시 충청도 경계선이 보입니다.
 
복귀하고 부대(특공 호텔. 안동 입대하여 대구 하양으로 이사를 갔는데 80년대에
좌변기에 라디에이터 있는 막사에서 생활했습니다. 한 내무반에 14명이 생활했습니다.
그 당시 일반 육군의 막사 시설에 비하면 가히 별5개짜리 호텔이라 칭함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에
복귀하니 전부다 다리병신....제대로 걷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전역하고 TV에서 천리행군하는 모 군부대 다큐를 관심있게 본 적이 있었습니다.
TV특성상 자기들 프로그램이 강하게 어필이 되어야 하니까 약간의 과장이 있었겠지만,
열흘간 혹독한 조건에도 불구 하고 무사히 천리행군을 마치는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다 "정말 대단하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니들 장난하냐?"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왜냐?
우리는 천리 행군을 일주일동안 주파했었습니다.
열흘동안 한다면 일일 걷는 거리가 더 짧았을텐데, 낙오병이 생겨 서로 부축해 주고
군장을 들어주고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가소롭기 그지 없었습니다.
"열흘동안 천리행군하면 깽?이로도 가겠다."라며 함께 보던 가족들에게 무진장 잘난척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엄청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중학교에 들어가고....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자랑스런 201특공여단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들어가서 글도 쓰고 읽던 도중!
부대 방문에 관한 안내문을 읽게되었습니다.
"무조건 간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역할 때는 부대 방향을 보고 오줌도 싸지 않겠다며 집으로 향했었는데......
 
전우회 선후배님과 만나 의논을 하고 단복도 맞추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방문한 나의 부대....
전역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였고
다만 나무들이 굉장히 크게 자란게 눈에 띄였고
예전에는 금남의 집으로만 생각했던 군부대 막사에서
"여자 화장실"이란 글을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 그리고 체육대회 결승전 전 날
온 부대가 축제 분위기에 들떠서 쫄따구고 고참이고 가족 애인을 부대에
초대하여 이게 군부대 연병장인지, 대학교 가을축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던 일.
여자들의 아련한 화장품 냄새가 군부대 쫙 깔려 있던 일.
부대안에 삽겹살 집이 있던 일....그리고 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사병들의 표정.....
 
그렇게 부대를 잘 다녀왔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그 이후 매년 부대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3년 다녀온 군대 얘기가 30년을 간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군생활 할 때는 좀 고달팠지만 전역을 하고 나니 201특공여단 출신이라는
자부심은(아무도 인정해 주지는 않지만..ㅋㅋ) 남다르답니다.
 
그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200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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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EU12/특공대
글쓴이 : 개밥그릇 7059806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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